서문: "조금 더 편하게 우울하면 어떨까?"
설경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인터뷰에서 “조금 더 편하게 우울하면 어떨까”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던졌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리고 우울증 당사자로서 설 원장은 자신이 겪어온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최근 신간 <나를 지키는 용기>를 출간하며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무기력감, 무력감, 공허감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는 어릴 적 따돌림과 학교 폭력,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입대 후 심한 우울증과 공황발작까지 겪으며 스스로도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 이번 글에서는 설경인 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나를 사랑하자"라는 흔한 다짐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1. "우울할 때 편하게 우울하자"의 의미
설경인 원장은 인터뷰에서 우울증에 대해 "우울할 때 우울하더라도 조금 더 편하게 우울하면 어떨까"라는 말을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과 달리,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더 편안하게 공존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흔히 무기력감과 무력감을 경험한다. 이 감정들은 때로는 명확한 이유가 없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설 원장은 특히 한국인들이 우울한 자신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나약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스티그마"로 여기며,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설 원장은 우울증은 삶의 일부분으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임을 강조한다. 삶의 연속선상에서 우울감은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울한 감정을 느끼다가 웃는 순간 "그래, 나는 우울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우울감이 다시 찾아올 때 더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2. "나를 사랑하자" 다짐은 왜 문제가 될까?
설경인 원장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나를 사랑하자", "나를 아끼자"라는 다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다짐이 오히려 자신이 현재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스스로에게 더 큰 압박감을 줄 수 있다.
그는 "나를 사랑하자"라는 다짐보다는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랑의 감정은 항상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순간에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3. 우울증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설 원장은 우울증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감정보다 사회적 기능에 더 중점을 둔다고 말한다. 경쟁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무시하고, 결국 병이 깊어진 상태에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특히 젊은 층, 특히 IT 계열에서 일하는 20~30대 환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과 경쟁 사회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설 원장은 이러한 무기력감이 단순한 핑계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경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자책하며, 자신을 더욱 가혹하게 대한다.
4. 무기력감의 해결 방안
무기력감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 중 하나이다. 설경인 원장은 무기력감을 단순히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 감정이 나타나는 순간에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기력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그 이면에는 나 자신과의 관계가 이미 훼손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가르치지만, 때로는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무기력감을 느끼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경쟁의 장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설 원장은 이러한 무기력감은 다룰 수 없는 감정일 수 있으며, 그 순간에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 상태를 인정하며 스스로와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5. 우울감을 다루는 법: 탈중심화
설 원장은 우울감을 다루는 방법으로 탈중심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우울한 감정을 다루려는 노력 대신, 그 감정을 그냥 두고 스스로와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우울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해결하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 나 자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잠을 자려고 애쓰면 더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우울감을 없애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감정을 더 키울 수 있다. 설 원장은 우울감과 함께 편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 우울함과 함께 하는 삶
설경인 원장은 우울함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울하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우울함 속에서 나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울할 거면 조금 편하게 우울하자"는 그의 말처럼, 우울감을 억누르거나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인정하고 스스로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 원장의 말은 현대 사회에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다루는 데 있어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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